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버나드 로 몽고메리 (문단 편집) === 전쟁의 막바지 === 1944년 겨울, 독일군은 [[아르덴 대공세|악천후를 이용해 1940년 프랑스 정복을 재현하려고 시도한다.]] 미군이 초반에 대패하다가 반격에 성공하여 승승장구하는 동안 몽고메리의 영국군은 네덜란드 지역의 독일군을 소탕하면서 미군 진영이 뚫리게 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. 하지만 전투 종료 후 "몽고메리가 승리를 자신의 덕으로 돌린다"는 기사가 미국 쪽 기자들에 의해 나돌게 된다. 원래 당시 몽고메리의 발언은 "우리도 승리에 일조했다" 정도였지만, "미군의 대승을 질투하는 영국놈"을 만들려는 미 언론에 의해 과장된 것이다. 아무튼 이후 미국쪽의 몽고메리에 대한 평가는 급락한다. 사실 이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몽고메리의 잘못도 있고 그와 동시에 몽고메리의 말이 맞는 점도 있었다. 우선 몽고메리 자신이 자존심+영국에 대한 자부심이 센지라 어느 정도 "미국이 나 없으면 못 이겼다."라는 뉘앙스를 풍긴 것은 사실이다. 이로 인해 [[드와이트 아이젠하워|아이젠하워]]와 [[조지 마셜]]은 격분하였고 몽고메리는 해임 위기에까지 몰렸다가 사과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했다. 뿐만 아니라 아르덴 대공세가 막 시작되었을 때에는 [[오마 브래들리|브래들리]]에게 "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도 안그러더니 꼴이 뭐냐?"라는 식의 모욕을 줘서 이때부터 [[조지 S. 패튼|패튼]]뿐만 아니라 다른 미군 장성들과도 거의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. 그런데 그의 말이 꼭 틀린 것도 아니라서, 아르덴 대공세 초기의 패퇴는 미군의 너무나 상황을 낙관한 사단 배치가 원인 중의 하나였으며 몽고메리 말대로 영국군이 쓰고 있던 팬텀 통신체계를 받아들이지 않아 초기에는 지휘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. 여기에는 일부 미군 장성들의 나태한 상황 대처에 뿔이 난 몽고메리의 반응도 있다. 오히려 몽고메리는 자신의 연락장교들을 이용해 연락이 엉킨 미군에 비해 초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. 그러나 한 야전군을 지휘하는 자신과 거의 동급인 연합군 장군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분명히 정치적, 외교적인 잘못이었다. 하여간 이 더러운 성질은... 덧 붙이자면, 아르덴 대공세는 첩보를 싸그리 무시하고 독일군의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에 "오려면 올테지" 라고 대답하고 전혀 준비를 안해 허를 찔린 브래들리에게는 몽고메리에게 마켓 가든 작전만큼이나 치욕스러운 전투였던 것이었다. 그러니 몽고메리가 저런 실언을 한 것은 말그대로 안그래도 아픈곳을 들쑤신 것... 아르덴 전투 이후 사실상 서부전선의 독일군은 궤멸 상태가 되었고, 이 때문에 몽고메리와 패튼은 손쉬운 먹이가 된 [[라인 강]] 도하작전을 먼저 벌이려고 노력했으며, 아이젠하워는 미군의 손실을 우려하여 영국군이 먼저 라인 강 돌파를 하도록 허가했으나 패튼이 몰래 먼저 도하해 버려 또다시 영광을 빼앗긴다. 1945년 5월에 [[승리의 날|독일이 패망하자]], 1945년 6월에 독일을 무찌른 공로를 인정받아 '''[[소련]]'''에서 [[전승훈장]]을 수훈했다. 총 17명의 수훈자 중 서방 연합군 측에서 이 훈장을 받은 사람은 [[드와이트 아이젠하워]]와 이 사람뿐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